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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8월 13일 (월) 12:44 [제 399 호]
홍제천의 봄(40)/홍제천 물길따라 만들어진 홍은동

홍지문 · 오간수문 등 문화재 깃든 터
이성계 도읍 천도시 보도각 백불서 소원 빌어
△著者 우 원 상

홍은동(弘恩洞)은 서울의 상징인 북한산 줄기의 능선과 백련산을 등에 지고, 앞에는 홍제천으로 띠두르고 건너편에 인왕산과 안산을 바라보면 한 10리가량이나 길게 뻗어내려 행정상 3개동으로 나누어진 산간마을이다. 광복 후 서울시로 편입되면서 옛 지명의 「경기도 고양군 은평면 홍제외리」에서 홍(弘)자와 은(恩)자를 따서 「홍은」 이라 이름했다.

동남으로는 홍제천을 경계로 홍제동과 마주보고, 동북으로는 서성(西城~북한산성의 일부)과 홍지문을 지경으로 종로구 홍지동·구기동과 접경하고, 서북으로 녹번동, 서남으로는 연희동·남가좌동과 손잡고 있는 한마디로 홍제천(모래내) 물길 따라 이룩된 동리다.

홍은동 옛 마을들의 자연스런 이름들을 더듬어보면 수마동(당)골(장마 때 수해지구∼홍은2동 포방터 시장 일대), 포방골(총·포사격장, 포방터시장), 호박골(호박밭∼대종교와 호박골 약수터 일대), 백련삿골(경팃말), 논골(沓洞~철종의 후예 이대감댁 뒷마을~지금의 스위스호텔 뒷마을), 치마바위골(현대아파트터~논골입구, 옛 채석장), 산골고개(접골약인 산골이 나와 옛 날부터 유명한 녹번동 넘어가는 고갯길) 등 그 연유를 알 만한 마을 이름들이다. 무엇보다 홍은동 하면 역사와 전통이 깃든 문화적 유산이 여러 곳에 있다. 홍제천 상류에서부터 첫 번째 서울특별시 문화재 제33호로 지정된 홍지문(弘智門)과 오간수문(五間水門) 및 서성(西城)이 있다.

홍지문은 조선시대 성문루(城門樓)로, 「한북문(漢北門)」이라고도 하며, 숙종 41년(1715)에 서울 도성과 북한산성을 보강키 위해 건축했으며, 홍제천을 가로질러 다섯 개의 수문을 낸 오간수문을 옆에 끼고 있어 성 내의 4소문중 하나인 광희문 처럼 「물문(水門)」이란 별명이 붙었다. 서성은 숙종 44년(1718)에 비봉옆 수리봉에서 인왕산의 성벽까지 쌓은 익성(翼城)으로, 오랜 세월에 퇴락했던 것을 홍은문과 함께 1977년에 보수 복원했다. 이 성울 안 세검정 일원을 탕춘대성(蕩春臺城)이라 불렀다.

이성계 도읍 정할 때 정성들인 보도각 백불

그 다음에 「보도각 백불(普渡閣白佛)」이 있다(홍은동 8번지). 홍지문에서 물따라 협곡을 조금 내려오면 바로 산벼랑 밑 냇가 암반에 세로로 새겨진 고려시대의 마애불(높이 5m정도)로서 전면이 거의 흰색 호분(胡粉)으로 칠해져(금분과 검은색도 곁들여 있지만) 백불(白佛)이라 하나 해수관음(海水觀音)이라고도 한다. 각(閣)을 지어 보위했지만, 밖에서 잘 보이도록 개방돼 있다.

이성계가 한양으로 도읍을 정할 때와 근세에 고종의 어머니(민씨)가 이 마애불 앞에서 각기 소원을 기원한 것으로도 유서깊다.

북한산(삼각산)의 구기리마애석가여래좌상(보물 제215호)과 함께 고려시대의 거작으로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7호로 지정돼 있다. 또 홍은2동 뒷산(일명 홍은산) 중턱에는 배달의 상징적 뿌리종교인 대종교총본사(大倧敎總本司)가 자리잡고 있다. 국조 단제(檀帝)를 교조로 하는 대종교는 단기 4242년(1909)에 나철 홍암대종사(羅喆 弘巖大宗師)가 중광한 이래 항일 독립투쟁으로 일관하면서 상해임시정부 수립에 중추가 되었고, 청산리대첩을 비롯한 여러 독립전쟁을 이끌어 대한 독립운동에 핵심체가 되었다. 그 총본사 울안에 해외독립운동의 정신적 지주였던 네종사(四宗師)의 비단(碑壇)인 ‘홍은단(弘恩壇)’이란 성역이 조성돼 있으며 홍은산은 영성이 서려 있는 기도처로서 소문나 있다.

또, 홍은동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곳이 백련산(216m) 남쪽 기슭에 자리한 백련사(白蓮寺∼홍은동 321번지)이다.
한국불교태고종에 속하며 신라 경덕왕 6년(747)에 진표(眞表)에 의해 창건되어 처음에는 정토사(淨土寺)라 했다. 조선 정종2년(1399)에 무악대사의 지시로 중건해 태종 13년(1412)에 태종이 요양차 머물렀으며, 세조때 의숙옹주(懿淑翁主)의 원당(願堂)으로 정하면서 백련사로 바꾸었다.

어느 여름날 연못에서 갑자기 하얀 연꽃이 피어올라 백련사로 개칭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임진왜란때 전화로 소실된 것을 재건했고 숙종 27년(1701)에 또 화재로 소실된 것을 3년 뒤에 중건, 그 후 한 전당(殿堂)씩 증축해 오늘에 이르렀으며 파란만장한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홍은동은 홍제동과 이웃하는 남매지간과도 같다

이 사찰을 속세에서는 「경티절」이라고도 부르고 그 아래마을을 「경팃말」이라고 속칭하는 것은 백련사 창건 당시의 옛 이름이 ‘정토사’로 명명한데서 오랜 세월 동안에 변전음(變轉音)된 것으로 본다. (정토사(淨土寺)의 옛 발음 표기는 졍토사)

문화의 전당인 「서대문문화체육회관(홍은동 산 26-155)」이 백련사와 경팃말(백련삿골) 중간 언덕에 웅장하게 세워져서(1993년 6월) 서대문 독립문화의 텃밭을 빛낼 뿐 아니라 서울에서도 자랑할 만한 시설과 운영의 다양성으로 예술인과 구민의 아우른 문화체육활동의 산실로 도약하고 있다. 이 곳은 「자연사박물관」과 더불어 서대문의 밝은 미래상이라 하겠다.

ⓒ 著者 우 원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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