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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린 시간속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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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06월 01일 (화) 11:10 [제 839 호]
예술의 생명력이 숨 불어 넣은 문래창작촌

방적공장 → 철공소→ 예술인들의 공간으로 무한변신
좁은 골목 따라 특색있는 맛집 즐비, 자생적 도시재생
회색 담벼락과 철제 대문, 예술가 영혼 담긴 캔버스로

△영등포구 문래동. 문래창작촌은 하나둘 빈집이 된 철공소에 예술인들이 둥지를 틀면서 자연스러운 도시재생이 이뤄진 곳이다. 이 곳은 그래서 70년대의 모습과 현재의 모습이 공존하는 독특한 분위기로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문래창작촌 골목에 자리잡은 공방들. 좁은 골목엔 맛집 대기열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문래창작촌 입구에 만들어진 깡통소년
△철공소 문을 통나무로 만든 맥주 펍과 오두막 캠핑장처럼 꾸며진 내부모습이다. 펍의 입구 계단은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가져다 놓았다.
△공방모습

영등포구 문래동은 사람 한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좁은 골목들이 옛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철공소들이 빼곡이 들어섰던 문래동 철강골목은 산업화 최전선의 현장이었다. 차가운 기계마찰음, 용접기의 빨간 불꽃, 노동자들의 땀으로 상징되던 문래동 철강골목이 새로운 문화공간으로 자리잡게 된 배경은 우연보다 필연에 가깝다.

1930년대부터 크고 작은 방적공장이 들어서면서 실을 만드는 「물레」라는 이름에서 동명이 유래할 만큼 섬유생산의 메카였던 「문래동」이 1970년대 산업화와 맞물리면서 철공소 밀집지역으로 호황기를 누리기도 했었다.
그 기억을 되살리듯 문래근린공원에는 물레형상의 조형물이 자리를 잡고 있다. 1986년 개장한 도심숲인 문래근린공원은 1961년 5·16 군사 정변 당시 육군 제6관구 사령부가 주둔했던 곳이었다. 이후 수도군단사령부와 제52보병사단의 최초 주둔지였기에 당시 작전회의를 했던 지하벙커도 남아 있다.

화무십일홍이라 했던가.
90년대부터는 중국산 부품이 밀려들면서 문을 닫는 철공소가 늘어났고, 서울시가 철강판매소를 외각으로 이전시키면서 철공소들이 문래동을 떠나기 시작했다.
그렇게 호황기가 끝나나 했던 문래동은 2000년대 초 가난했지만, 열정은 뜨거웠던 예술인들이 하나둘 찾기 시작했다.

서울에서 상대적으로 임대료가 싼 문래동에 예술인들이 작업실을 열면서 새로운 문화예술의 메카로 발전해 나갔다. 그림과 조각, 사진, 영상, 애니메이션, 전통예술가와 문화기획자 등 장르도 다양했고, 새로운 장소에서 시도됐던 작품을 모아 그들만의 전시회가 열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예술가들의 전시회를 보러 찾아온 젊은 방문객과 외국인 관광객들이 늘었고, 자연스럽게 카페와 식당, 공방들이 하나 둘 생겨면서 문래동은 지금의 모습으로 서서히 변해 나갔다. 최근에는 한 방송사의 프로그램인 「놀면 뭐하니」의 환불원정대 뮤직비디오 촬영장이 되기도 했다. 자연스러운 도시재생이 이뤄진 셈이다.

골목들 사이에 몇몇 식당들은 SNS를 통해 입소문이 퍼지면서 대기열이 생길 만큼 인기 맛집이 되기도 했다.
문래창작촌 초기 문을 연 1세대 맥주 펍이었던 「불탄집 아곤」은 러시아 스타일의 요리들을 맛볼수 있다. 진짜 불이 났던 철공소였던 이 곳은 천정에 불에 탄 흔적을 그대로 두었다. 문래동이 예술가들의 공간이 될 때쯤 문을 열었던 아곤의 사장 형제들도 하나둘 식당을 시작해 지금은 이름난 맛집들이 됐다. 그가 이 곳에 자리잡게 된 것도 어머니가 오래전 문래동에서 식당을 운영했기 때문이었다.

주거지를 대구에서 서울로 아예 옮겨 온 닭꼬치집 「에이」, 문어삼합과 문어 조개탕등 해산물을 전문으로 하는 「VOLGA(볼가)」가 형제들이 운영하는 곳으로 이웃하고 있어 서로 왕래하며 돕고 있다. 볼가 골목 앞 입간판 위에는 동그란 시계가 새장속에 갇혀있고, 그 아래 「시간을 가두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다. 예전 한옥 대문 그대로 색만 덧칠한 가게의 현관이 그 의미를 전한다.
카페와 식당들 사이에는 작고 예쁜 공방들도 심심치 않게 눈에 띈다.

가죽과 나무, 은을 세공하는 공작소와 화장품과 향수 공방, 비누를 만들거나 구입할 수 있는 작업실도 휴일을 맞아 문래창작촌을 찾는 이들을 기다린다.
하지만 이곳도 유명세를 타면서 젠트리피케이션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게 점주들의 설명이다.
닭꼬치집 에이의 주인 K씨는 『상권이 뜨자 새로운 식당과 카페를 차리려는 이들도 늘어났다. 빈 점포가 있으면 바로 빠지기 때문에 매물이 없어 가게가 나길 기다리는 대기자들이 늘고 있다』는 설명이다.

실제 창작촌 골목의 상가 임대료는 대로변 인근은 임대료보다 상대적으로 저렴하고, 월세도 낮다. 그러나 임대료가 오르지 않는 배경에는 빈 철공소의 주인들이 건물시세가 오를 것을 대비해 매물을 내 놓지 않고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문래동 창작촌은 이런 이유로 철공소의 차가운 삭막함과, 예술가들의 따뜻한 감성이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호황기를 누리고 있다. 방적공장에서 철공소로 이제는 예술가들의 영혼이 깃든 문화공간으로 도약중이다.

골목 곳곳에 철공소의 흔적이 남아있는 것도 이색적이다.
문래역 7번 출구를 따라 이동하면 창작촌의 다양한 행사를 볼 수 있는 영상 안내판이 있고, 그 길을 따라 오즈의 마법사에 나왔을 법한 깡통 로봇이 창작촌 입구를 지키고 있다. 통나무 벽에 에스컬레이터 계단을 발판으로 삼은 맥주 펍 토이스토리의 내부는 흡사 캠핑장을 떠올리게 한다.
골목 곳곳의 어두운 시멘트과 철제 대문은 예술가들의 영혼을 담은 캔버스가 됐다.
「문래」의 한자 이름은 「文來」다. 직역하면 「글이 온다」지만, 다양한 문화예술의 의미로 본다면 「문화와 예술이 온다」는 뜻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 않을까.
미래를 내다본 동명이다.


<옥현영 기자>

ⓒ sdmnews 옥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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