능안골 물줄기를 놋개천(녹계천∼綠溪川)이라 한 것도 놋그릇장에서 유래했다 한다.
새마음(명지) 종합병원 자리는 원래 성결교회와 신학교 자리로 조용하고 잘 가꾸어진 곳이었다.
또 아현천주교회와 애오개길 사이에 걸쳐 앉기 좋은 넓은 바위가 있는 앞 마을을 「걸바위골」이라 하였으며 이곳에 정조(正祖∼1776-1800)의 후궁 화빈 윤씨의 묘소도 있었는데, 1937년에 서오릉으로 옮겨졌다.
이 지역은 현재 북아현1동에 속하며 도성문안의 초입이라 일찍이 상업이 발달된 곳으로 유기전, 가구·죽세공업과 행상(行商)도 발달됐었다.
굴레방다리에서 큰고개(大峴)로 넘어가는 언덕길(애오개 길의 연장) 근방은 복주산 줄기로서 나무도 많고 물이 좋아 장수하는 노인이 많아 복수산(福壽山)이라고도 하였다.
부상 피해 심해 금지령 내린 ‘돌싸움’ 해마다 이어져
황해도 횃불싸움과 견줄 만한 민속놀이 중 하나
이 곳에 특출한 넓은 바위가 있어 너븐바위, 너븐배라 부르며 이 마을을 「너븐 바위골(廣岩洞)」이라했다. 또 「두께우물」, 「명수우물」 등 물맛으로도 이름났었다.
현재 이 지역은 북아현2동으로 아현시장과 시민아파트 15개동이 들어선 지도 오랬으며, 한성중·고등학교와 북성초등학교가 자리잡고 있어 동네의 싱그러운 기운을 한결 붇돋아 준다.
큰고개에서 흐르는 물과 능안골에서 내려오는 놋개천물(현재 복개하여 능안로라 명명되었음)이 굴레방다리에서 합쳐 마포방향으로 흐르는데, 아현동쪽으로 건너는 다리 난간이 말굽같이 생겼다고 이름 붙여진 「말굽다리」가 있었다.
또, 아현에서 이름난 민속문화 중에 풍년을 기원하는 편싸움과 중부지방 산대놀이 본산 애오개 본산대가 있었다.
편싸움이란, 매년 정월대보름날에 만리재 사람들과 애오개 사람들이 편을 갈라 돌싸움(石戰)을 벌였는데, 만리재(삼문밖이라 함)쪽이 이기면 서울 일원에 풍년이 들고, 애오개편에서 이기면 8도(八道∼전국)가 풍년이 든다고 믿었다.
때문에 부상을 입어도 서로 탓하지 않고 해마다 이어졌다. 특히, 애오개는 8도를 대표한다고 하여 이웃 동네(마포나 용산…) 청소년들이 원정을 와서 애오개 편의 사기를 돋아주어 이기는 횟수가 많았다고 한다.
부상 피해가 심하다 하여 나라에서 금지시켰으나, 좀처럼 없어지지 않고 일제하에서도 그 유습이 남아 소년들 사이에 동네끼리 돌 싸움이 곧잘 벌어졌었다.
황해도의 횃불싸움과 비교될 만한 민속놀이라고 조선시대 유득공(柳得恭)의 경도잡지(京都雜誌)에 소개된 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