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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09월 05일 (수) 14:23 [제 401 호]
홍제천의 봄(42)/모래내 有感 ②

국난으로 지친 백성의 마음까지 닦아주던 모래내
내부순환로 아래 냇마음 찌들어 사천으로
△著者 우 원 상

나는 어려서 동무들과 함께 모래내 아랫녘에서 게잡이 한다고 냇가 양 섶의 구멍을 후비다가 게한테 손가락을 물렸던 추억을 잊지 않고 있다.

이 냇이름을 조선시대에 한자로 「사천(沙川)」이라고 한 것을 보면 아주 먼 옛부터 「모래내」라 불리어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중에 홍제원이 서면서 홍제천으로 불리고 있으나 요새 나온 어떤 지도에는 사천천(沙川川)이라 표기한 것을 보고 실소(失笑)했다. 굳이 한자식으로 쓰려면 「사천」이면 됐지, 「사천천」은 무엇인가.

근래 개축된 다리에도 양쪽 난간 첫 기둥에 「사천교」라고 음각해 놓았다. 요는 딱한 것이 일반 시민은 여전히 「모래내다리」라 부르고 있다.
어찌 부르건, 모래내는 지금의 360여년 전 병자호란(丙子胡亂 1636년) 때에 인질로 잡혀갔던 많은 백성들을 구제한 공훈을 세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 청국군의 침입으로 온 국토가 유린되고 수만명의 젊은 남녀들이 인질로 잡혀갔다. 이들이 황량한 북녘 벌판(만주)에서 여러해 동안 천신만고(千辛萬苦) 끝에 풀려나서 환국길에 올랐는데 조정에서는 오랑캐들에게 더렵혀진 절조(節操)  문제로 국론이 일었다.

결론은 국난(國難)으로 당한 무고한 백성들의 억울함이니 깨끗이 없었던 일로 사면하되, 홍제천(모래내)에서 목욕재계하고 도성으로 들어오게 하였다. 삼삼오오 지칠 대로 지친 귀향행렬이 도착하는대로 이 맑고 시원한 시냇가에서 한숨 돌리며 정갈하게 미역을 감았다. 이로써 모든 진욕을 말끔히 떨쳐 버리고 새 사람으로 회생하고자 한 것이다.

그러나, 그 병든 군상(群像)들을 일일이 어루만져 닦아 주고 달래 주던 모래내의 냇마음(川心)은 어떠했겠는가. 모정(母情)의 눈물을 수없이 흘렸으리라.
모래내는 이 역사적인 사실을 영원히 잊지 못하는 애절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이 한 많은 모래내의 천변에도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모래내 냇줄기를 타고 도시외곽 순환고가도로가 건설되어 모래내 지역의 명물로 등장했다. 고가도로 위로 줄지은 가로등 행렬의 야경은 그 화려함이 일품이다.

이와 반대로 냇물은 오염되고 메말라 찌들 대로 찌들어 사라져 가고 있다. 아마 모래내의 냇마음은 장송곡을 연주하는 심경일 것이다.
이렇게 모래내는 근대화라는 거창한 풍랑 속에 침몰할지라도 이 지역에 「모래내」라는 이름 석자를 남기는 것으로써 환생의 한풀이라 여기고 안도의 숨을 쉴 수 밖에 없지 않은가.
어떻든지 모래내 지역은 옛정서에서 멀어져 가면서도 한편 역동적으로 전체가 분주하게 돌아가고 있다.

새로운 도시의 꿈을 안고 하나같이 움직이고 있음이 분명하다. 시끄러운 기계소리와 망치소리도 하나의 시가 되고 음악이 될 수 있을 바에는 모래내 주변의 싱그러운 자연과 신(新)·구(舊)정서가 조화를 이루어 새로운 도시의 향토적인 홍익인간(弘益人間) 사회가 조성되어지기를 간절하게 바랄 뿐이다.

ⓒ 著者 우 원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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