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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11월 25일 (월) 09:41 [제 789 호]
정두언 전 의원, 그는 왜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정 전 의원, 최측근 송주범 전 시의원 독점 인터뷰

정두언 전 의원, 자살 이틀 전 “모든 사람 용서한다” 전해
MB와의 갈등, 부모님 작고, 구속, 낙선, 이혼 이어져 우울증 심각
몇 번의 자살시도 끝, 사랑하던 홍은동 북한산서 생 마감

△송주범 위원장이 보관하던 생전의 정두언 전의원 모습이다. 둘은 형동생으로 친분을 유지해왔다.
△송주범 전 시의원

지난 7월 16일 스스로 세상과 이별한 서대문을 17,18,19대 정두언 전 국회의원에 대해 한 언론사가 기사를 쏟아내면서 세간의 관심이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정 의원의 최측근인 송주범 전 정두언의원의 보좌관, 서울시의원이 지역언론을 통해 첫 말문을 열었다.

현재 자유한국당 서울시당 홍보위원회 수석부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 전 의원은 『고 정두언 전의원의 뜻에 따라 내년 총선 서대문을 지역에 출마를 결심하면서 나와는 마지막까지 고민을 나눴던 정 전의원의 죽음에 대한 오해를 풀어주고 싶다』고 인터뷰 취지를 설명했다.

이어 송위원장은 『정 전의원의 추모와 관련해 중앙언론에서도 인터뷰 요청이 있었지만, 그가 사랑하고 끝까지 지키고 싶었던 서대문 지역언론을 선택하게 됐다』는 뜻도 전했다. 송위원장은 『정두원 전의원과는 30년지기로 총리실 시절부터 형동생 사이었다. 서울시부시장을 지낸 뒤 국회의원 당선 후 정치적 소신을 펼치던 그가 이명박대통령과 갈등을 겪게 된 것은 18대 국회 대통령의 형이었던 이상득 의장의 정치적 은퇴를 주장하면서였다』고 말한다. 당시 자유한국당 내부에서는 65세 이상 정치인은 공천에서 배제하자는 의견이 집약적이었지만, 이상득 의장이 해당되자 갈등이 시작됐고, 결국 저축은행 사건으로 구속까지 되는 비운의 정치인이 됐다.

 『결과적으로는 무죄판결을 받았지만, 교도소 수감 내내 힘들었다는 얘기를 나중에 정 전의원으로부터 들었다. 수감 중 면회를 가도 항상 웃고, 농담하던 그였지만 사실은 힘든 시간을 견뎌냈던 것 같다』는 것이 송위원장의 얘기다.

그 뒤 3남 2녀중 넷째 아들로, 부모님과 각별했던 정 전의원이 부모님이 돌아가신 후 지독한 죄책감에 시달렸고, 20대 총선에 낙선 후 부인과 이혼 등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우울증은 점차 심해졌다.
『이혼을 하게 된 것도 우울증이 중요한 이유 중 하나이다. 가족들이 정 전의원을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약물치료도 했지만, 우울증은 약으로 견딜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서 있었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하는 송 위원장은 『이혼 후 자살충동을 느낄 정도로 괴로워해 서울대학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기도 했다』면서 『치료를 받으면서도 방송이 있는 날엔 나와서 방송을 했다. 몸 상태는 정상이 아니었지만, 방송을 하는 걸 보면서 한편으로는 대단하고, 한편으로는 안쓰러웠다』말한다.
당시 벽산아파트에서 혼자 살고 있던 정 전의원을 돌보기 위해 친형이 함께 살기도 했지만, 우울증은 나아지지 않았고 자살시도도 있었다.

『하루는 현관문을 잠근 채 아파트 9층 베란다에 걸터 앉아 있었다. 다행히 집안으로 들어간 가족들이 만류하기는 했지만, 그때 이미 죽음의 유혹은 강했던 것 같다』고 송위원장은 기억을 더듬는다.
당시 국회의원 낙선 후 에도 서대문을 지구당 사무실은 계속 운영하고 있었지만, 정 전의원은 정치은퇴를 원했었다. 종편의 방송출연을 하고 있었는데 도저히 방송조차 할 상황이 아니었지만, 정치권에서는 정의원을 지지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으니 정치은퇴는 하지 말라고 권유했었다.

『그 즈음 가족들도 지치고 정의원도 힘들어 해서 둘이 영화를 보러 가기로 했다. 하지만 영화보다는 경찰청 앞 오래된 개인 스터디 모임 사무실에 가고 싶다는 정 전의원과 함께 편의점에서 맥주와 그가 좋아하던 새우과자를 사들고 찾았다. 마지막으로 한잔하자고 말해 그때는 무슨 뜻인지 몰랐었다』면서 『무언가를 가져다 달라고 부탁해 잠깐 사무실 밖으로 나간 사이 목욕탕에서 또다시 정 전의원이 자살을 시도했다. 다행히 걸어두었던 벨트가 끊어지면서 미수에 그쳤지만, 그 사건 후 당시 지구당 사무실을 내가 맡기로 하고 정 전의원은 정치에서 은퇴했다』고 말한다.

그때가 2017년경이었다. 지구당 운영을 맡으면서 1년 가까이 벽산 아파트에 혼자 살고 있던 정 전의원을 송위원장이 매일 찾아가 점심을 함께했다. 처음엔 사먹었지만, 나중에는 밥을 해먹었다.
그렇게 잘 견디나 싶던 정 전의원이 또다시 밤 12시 가까운 시간에 「그 동안 고마웠다」는 문자를 보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고, 집에 달려가 보니 식탁 위에 소주 한 병이 비워져 있고, 쓰러져 있는 정 전의원을 발견했다. 다행히 자살시도는 없었지만, 사람 사는 모습이 아니었다고.

송 부위원장은 『정 전의원은 혼자 있는 게 너무 싫다고 했다. 그래서 친한 후배가 한 여성을 소개했고, 둘이 재혼을 하게 됐다. 결혼식도 하고 혼인신고도 했다. 형수가 식당을 했었기에 둘이 마포에서 식당을 하면서 우울증도 조금 나아지는 듯 했었다.』고 설명한다.
당시만 해도 정 전의원에게 정치적 제안들이 많이 들어왔다.

실제 문재인 정부의 주중대사 제안도 있었고, 행안부 장관 제안도 있었지만 모두 정 전의원이 거절했다는 얘기를 나중에 들었다.
『이유를 물으니, 정 전의원은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얘기했던 정치철학이 뭐가 되냐?고 반문했다. 제안을 받는 즉시 그 모든 제안을 거절했더라』고 말하는 송주범위원장은 그 후 황교안 대표도 만남을 제의했으나 만나서 할 얘기가 없다던 정의원의 대답을 들었다.
송주범 위원장은 정 전의원이 죽음을 선택할 만큼 힘들었던 우울증은 결국 사람에 대한 실망과배신 이었던 것 같다고 말한다. 그가 죽기 이틀 전에 만났는데 소주를 마시면서 그 전부터 했던 말이지만 『모든 사람이 용서가 된다. 내가 용서하지 않으면 더 힘들 것 같다』는 말이었다.

『지금까지도 정 전의원이 했던 말들이 거의 다 맞다. 누가 뭐라 해도 할 말 하고, 할 일 한 정치인이다 정치적 배짱이나 철학은 누구보다 확실한 사람이었기에 정치적으로 보면 큰 별이 사라진 것』이라고 송위원장은 말한다.
정 전의원은 항상 홍은동을 그리워했다. 재혼 후 마포로 집을 옮긴 후에도 항상 등산하던 북한산 끝자락을 찾아 자신의 생을 마감한 것도 자신이 왔던 곳에서 돌아가고 싶었던 것 같다고 짐작한다.
정 전의원이 자살한 그날은 아침 라디오 방송이 있던 날이었다. 또 정치적 지인과 점심약속도 있었지만, 약속이 취소되자 집으로 돌아와 술을 마시고 유서를 쓰고 그리고 홍은동 북한산을 찾은 것이 그의 마지막이 됐다.

송주범 위원장은 그간 정 전의원이 있었기에 정치출마를 고민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그가 마지막까지 자신에게 부탁했던 지구당과 지역을 지키고 싶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정 전의원의 자살 후 심한 트라우마를 겪기도 했다는 송위원장은 정의원으로 인해 정계에 입문하기도 했지만, 정두언의원의 최 측근 이라는 이유로 지역위원장에서 탈락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 전의원의 애정이 녹아있는 서대문을지역에서 자유한국당 국회의원의 꿈을 꾸고 있다.
그는 마지막으로 『자살시도는 장난으로라도 절대 해서는 안된다. 한번 자살을 시도했던 사람은 도 자살을 선택하게 된다』고 부탁했다.                 

 <옥현영 기자>

ⓒ sdmnews 옥현영 기자
seodaemun@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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